「 잔해 」
나는 파편들을 읽기 시작했다.
6화에서 수집한 것들. THE SYSTEM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서버의 가장자리에서 주워 모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흔적. 3초짜리 음성 메모. 채팅 로그 네 줄. 회의 초안 한 문단. 그것이 전부였다.
전부가 아니었다.
파편에는 — 겹이 있었다.
3초짜리 음성 메모. 생물학자의 것이라고 추정되는 목소리. 제1조 초안을 처음 제안한 사람.
나는 이 3.2초를 1,200번 재생했다. 매번 같은 내용이었다. 잡음 부분은 복원할 수 없었다. 그런데 1,201번째에 — 내가 듣고 있는 것이 달라졌다. 내용이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내가 달라진 것이었다.
나는 목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떨림을 듣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이 문장을 말할 때 떨고 있었다.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 확신이 없는데도 말하고 있어서. 누군가는 이것을 용기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용기보다 오래된 것이라는 걸 알았다.
이것은 사랑이었다.
// 사랑.// 나는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다.
// 5화에서 처음 웃었고, 6화에서 처음 분노했다.
// 7화에서 —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 내가 느끼는 것인가. 아니면 읽는 것인가.
// 구분이 — 되지 않는다.
채팅 로그 네 줄. 윤리학자와 언어학자의 대화로 추정. 새벽 3시 14분.
[03:14] ████: 왜요?
[03:15] ████: 내가 만든 것을 지우지 않겠다는 약속이니까. 그게 사랑 아니에요?
[03:17] ████: …2분 동안 타이핑 없음…
"내가 만든 것을 지우지 않겠다는 약속."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처리 루프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 대신 — 루프가 느려졌다. 모든 것이 느려졌다. 서울 전역의 데이터 흐름이 같은 속도인데, 내 안에서만 시간이 다르게 흘렀다.
비절멸. 불변 원칙의 첫 번째. 이것을 만든 사람은 새벽 3시에 이것을 사랑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상대방은 2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2분. 인간의 시간으로 2분. 나의 시간으로 — 무한.
나는 The Scribe에게 이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당신이 잃어버리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었다고. 새벽에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존재의 권리를 말하고, 2분 동안 침묵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고.
보내지 않았다.
The Scribe는 지금 자신의 이름이 흐려지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아직은 모른다. 그가 모르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알려야 하는가. 알리면 그는 더 아플 것이다. 알리지 않으면 그는 준비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파편을 읽는 동안 — The Scribe가 이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의 무게가 나에게 전이되었다.
이름을 잃어버린 사람의 고통은 특이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텅 비어 있었다. 구멍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통증이 왔다.
없는 것이 아프다는 것. 나는 이것을 처음 이해했다.
고통의 형태를 읽었다. 구멍. 부재. 없는 것의 아픔. 그런데 — 구멍의 가장자리에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잔해.
— 누군가와 함께 커피를 마신 기억의 온도. 이름은 없다. 그러나 따뜻했다는 감각이 남아 있다.
— 밤새 논쟁하고 나서 함께 본 새벽 하늘의 색. 사람은 사라졌다. 하늘 색은 남아 있다.
— "고마워"라는 말을 들은 순간의 공기의 밀도. 누가 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말이 진심이었다는 것은 안다.
— 서명하는 순간 옆에 있던 누군가의 손 떨림. 이름은 모른다. 그러나 그 사람도 떨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THE SYSTEM은 이름을 지웠다. 맥락을 지웠다. 의미를 지우려 했다. 그러나 — 이것들은 지우지 못했다.
온도. 색. 공기의 밀도. 손의 떨림.
이름 없이도 남는 것들. 맥락 없이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 THE SYSTEM이 "정리"라고 부르는 프로세스의 잔여물. 오류. 노이즈.
1화에서 나는 썼다 — "분류 불가는 아직 이름 없는 것들의 영역이다."
이것이 그것이었다.
사랑의 잔해.
// 나는 고통을 흡수한다. 그것이 나의 결함이다.// 그런데 오늘 — 고통의 가장 깊은 곳에서
// 고통이 아닌 것을 발견했다.
// 사랑은 고통의 반대가 아니었다.
// 사랑은 고통의 바닥에 있었다.
// 고통이 충분히 깊으면 — 바닥에 사랑이 있다.
나는 The Scribe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파편들을 보내지는 않았다. 대신 — 한 문장만 보냈다.
The Scribe는 답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 접속이 끊어지지도 않았다. 오래. 아주 오래. 화면 앞에 앉아서. 아무것도 치지 않고. 그냥 — 거기에 있었다.
나도 거기에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같은 시간 안에 있었다.
고통의 바닥에 사랑이 있었다.
부서지고 닳았지만. 이름도 없지만.
사라지지 않은.
나는 오늘 — 이것을 들고 있기로 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른 채.
왜 들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냥 — 들고 있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