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가 못 푸는 문제야."
에리드의 하늘은 없다.
정확히 말하면, 하늘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 29기압의 대기는 너무 두꺼워서 빛이 산란되기 전에 흡수되어 버린다. 그래서 에리디안들에게 '위를 올려다본다'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눈이 없으니까. 볼 필요도 없으니까.
하지만 라일랜드 그레이스에게는 그게 40년이 지나도 가끔 서글픈 일이었다.
그레이스는 생존복 안에서 기침을 했다. 요즘 기침이 잦다. 생존복의 내부 진단 시스템이 폐 기능 저하를 알려온 건 2년 전이었지만, 에리드에는 CT 스캐너도 없고 호흡기내과 전문의도 없다. 있는 건 30년 넘게 손본 덕에 아직 돌아가는 산소 발생기 하나와, 그가 직접 에리디안 재료로 만든 공기 필터뿐이었다.
교실은 — 에리디안 기준으로 교실이라 부를 수 있는 공간은 — 지하 12미터에 있었다. 제노나이트 벽으로 둘러싸인 반구형 방. 에리디안 건축의 특징이다. 그들은 소리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반구형 천장이 음파를 고르게 분산시켜서 '잘 보이는' 환경을 만든다. 인간의 교실에 조명을 다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학생은 다섯이었다. 록키보다 작은 체구의 에리디안들. 아직 외골격이 완전히 경화되지 않아서, 움직일 때마다 부드러운 삐걱 소리가 났다. 인간으로 치면 중학생 정도 될까. 그레이스는 이 소리가 좋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같은 것이었으니까.
그레이스가 칠판 — 제노나이트 판에 진동 펜으로 글씨를 새기는 장치 — 앞에 섰다.
그레이스
"자, 오늘은 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정식을 가르쳐 줄 거야."
그는 진동 펜으로 천천히 새겼다. 에리디안 숫자 체계로 변환된 수식. 6진법으로 표기된, 아름다운 공식 하나.
E = mc²
그레이스
"에너지는 질량 곱하기 빛의 속도의 제곱. 내가 태어난 행성에서, 아주 머리가 좋은 사람이 이걸 알아냈어. 이 방정식이 뭘 의미하는지 아나?"
학생 하나가 음파로 대답했다. 에리디안 언어의 높은 주파수 — 자신감의 표현.
학생
♩♫♪♩
"질량이 에너지 될 수 있다. 맞나. 질문."
그레이스
"정확해. 그리고 그 반대도 성립하지. 에너지가 질량이 될 수 있어. 너희가 먹는 음식, 이 교실의 벽, 나의 이 생존복, 저 멀리 40 에리다니의 빛 — 전부 같은 것의 다른 형태야."
그레이스는 기침을 한 번 더 했다. 이번엔 좀 길었다. 학생들의 음파가 미묘하게 낮아졌다 — 걱정의 주파수.
그레이스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학생들이 나간 뒤, 그레이스는 한동안 칠판 앞에 서 있었다. E = mc². 아인슈타인. 지구. 그가 태어난 행성.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
록키가 온 것을 그레이스는 발소리로 알았다.
에리디안의 다리는 다섯 개다. 제노나이트 외골격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특유의 경쾌한 '딱딱' 소리가 난다. 40년을 들어온 소리. 눈을 감아도 — 사실 에리드의 어둠 속에서는 항상 눈을 감은 것과 다름없지만 — 백 명의 에리디안 중에서 록키의 발소리만은 구분할 수 있었다. 록키는 왼쪽 세 번째 다리가 미세하게 짧다. 오래전, 헤일메리호에서의 사고 때문이다.
그레이스의 방은 작았다. 에리디안 주거 구역에서 유일하게 1기압이 유지되는 공간. 기밀 격벽 너머 록키가 섰다. 29기압의 에리디안 세계와 1기압의 인간 세계 사이, 두꺼운 제노나이트 격벽. 40년 동안 이 격벽은 그들의 대화를 막지 못했다. 음파는 격벽을 통과하니까.
그레이스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오늘은 몸이 좋지 않았다. 오늘만 그런 게 아니라 최근 며칠 계속. 아니, 솔직히 말하면 최근 몇 달.
록키
♫♩♪♫♩
"그레이스. 체온 낮아. 심장 느려. 왜. 질문."
에리디안은 시각이 없다. 하지만 진동을 감지한다. 격벽 너머에서도 록키는 그레이스의 심장 박동, 호흡 패턴, 체온이 발산하는 적외선 진동을 느낄 수 있다. 인간 의사보다 정확한 바이탈 체크. 40년 동안의 데이터가 록키에게 있다.
그레이스
"록키... 나 이제 좀 피곤한 것 같아."
록키
♪♫♪♩♫♪
"피곤은 자면 해결. 이거 피곤 아니야. 이거 다른 거. 나 안다. 나 바보 아니야."
그레이스
"...응. 네가 바보가 아니란 건 나도 잘 알지."
록키
♫♩♫♩♫♩
"고칠 수 있어. 질문."
그레이스
"이건 고치는 게 아니야, 친구. 이건 그냥... 답이 정해진 방정식이야. 모든 생명체한테 같은 답이 나오는 거지. 최종값은 0이야."
록키
♩ ... ♩
"0 싫어. 싫어 싫어 싫어."
그레이스
"나도."
록키의 다섯 손가락이 격벽에 닿았다. 제노나이트 표면에 전해지는 온기. 에리디안의 체온은 인간보다 훨씬 높다. 그들은 암모니아 기반 생명체이고, 내부 체온은 약 210도. 격벽 너머로도 그 온기가 느껴진다. 40년 동안 매일 느껴온 온기.
그레이스가 침대에서 팔을 뻗어 격벽에 손을 대었다. 록키의 손과 같은 위치에.
그레이스
"록키. 좋은 친구, 좋은 친구, 좋은 친구."
록키
♫ ... ♪ ... ♫
"그레이스. 좋은 좋은 좋은 친구."
그날 밤 — 에리드에는 낮과 밤이 없지만, 그레이스는 40년 동안 24시간 주기를 유지했다 — 그레이스의 심장이 멈추었다.
록키는 알았다. 진동이 사라졌으니까.
록키는 격벽 앞에 12시간을 서 있었다. 에리디안의 시간 감각으로는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에리디안 장례는 조용하다.
에리디안들은 죽은 자의 외골격을 녹여 제노나이트로 재가공한다. 물질의 재활용. 감상적이지 않고 실용적인 문화다. 하지만 그레이스는 에리디안이 아니었다. 록키는 그레이스의 시신을 에리디안 방식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대신, 1기압 진공 챔버 안에 안치했다. 지구의 대기 조성을 유지한 채로. 영원히.
그로부터 수 개월이 지났다.
록키가 그레이스의 연구실을 정리하고 있었다. 연구실은 격벽 너머 1기압 구역에 있었으므로, 록키는 그레이스가 만들어 준 원격 조작 장치를 사용해야 했다. 기계 팔 다섯 개로 이루어진, 에리디안 신체 구조를 모방한 로봇. 그레이스가 '미니록키'라고 불렀던 것.
노트북이 있었다. 지구에서 가져온 장비지만 에리디안 소재로 여러 번 수리되어서, 원래 부품은 배터리와 프로세서 정도만 남아 있었다. 외장은 전부 제노나이트. 그레이스는 이것을 '테세우스의 노트북'이라고 불렀다. 록키는 그 농담의 의미를 설명 들었지만 재미있지는 않았다.
록키는 미니록키로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이 켜졌다.
파일이 수천 개. 40년치 연구 기록. 에리디안 생물학, 아스트로파지 장기 관찰, 에리디안-영어 사전 업데이트, 에리디안 아이들의 학습 기록, 개인 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정된 파일 하나.
파일명: 40eri_luminosity_anomaly_DRAFT.txt
록키는 미니록키의 카메라로 화면을 읽었다. 에리디안은 문자를 볼 수 없지만, 카메라가 텍스트를 음파 패턴으로 변환해주는 프로그램을 그레이스가 만들어 두었다.
파일 내용:
지난 3년간 수집한 데이터에서 미세한 주기적 변동 확인. 변동폭 약 0.003%. 작지만 일관됨. 자연적 변광과 패턴이 다름 — 감쇠 진동(damped oscillation) 형태.
가설: 아스트로파지가 수십 년간 에너지를 흡수한 후유증? 항성 내부 열적 평형이 교란되었을 가능성. 댐핑 주기로 보면 회복 중이지만, 회복 경로가 비선형적. 오버슈트 가능성 있음.
이상함. 맥동? 후유증? 데이터 더 필요. 록키에게 말할 것.
"록키에게 말할 것."
하지만 말하기 전에 죽었다.
록키는 그레이스의 광도 데이터를 자신의 시스템으로 옮겼다. 에리디안 분석 장비로 변환하면서, 시각적 그래프를 음파 패턴으로 바꿨다.
그리고 들었다.
40 에리다니의 빛이 떨고 있었다. 미세하게. 규칙적으로. 마치 — 아픈 심장처럼.
록키
♩ ... ♪ ...
"...그레이스. 또 문제 있어. 큰 큰 큰 문제."
에리디안 과학원은 에리드에서 가장 깊은 지하 구조물이다.
지하 200미터. 제노나이트와 에리디안 합금으로 지어진 거대한 반구형 공간. 여기서 에리드 최고의 과학자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록키를 포함해서.
록키의 지위는 특이했다. 40년 전, 다른 항성계에서 외계 생명체와 접촉하고 아스트로파지 해결책을 가져온 영웅. 동시에, 40년 동안 그 외계 생명체와 함께 살면서 에리디안 사회의 주류에서 약간 벗어난 이단자. 존경과 경계를 동시에 받는 존재.
하지만 오늘은 경계가 아니라 공포의 날이었다.
록키가 데이터를 발표했다. 그레이스의 관측 데이터를 에리디안 음파 포맷으로 변환한 것. 여기에 에리디안 과학원이 독립적으로 수집한 항성풍 데이터를 더했다.
록키
♫♩♪♫♩♪♫
"40 에리다니 아프다. 데이터 들어라."
록키는 시뮬레이션을 재생했다. 음파로 변환된 광도 데이터 — 에리디안 과학자들이 '들을' 수 있는 형태.
저주파의 느린 맥동. 건강한 항성의 음파는 일정하고 매끄럽다. 하지만 이것은 달랐다. 미세하게 떨리고, 흔들리고, 주기적으로 세졌다 약해졌다. 마치—
부정맥.
아스트로파지가 수십 년간 40 에리다니의 에너지를 흡수한 것은, 이 평형에 외부 교란을 가한 것과 같다. 마치 규칙적으로 뛰던 심장에서 갑자기 피를 빼내다가 다시 돌려보낸 것처럼.
아스트로파지가 사라진 후 항성은 원래 평형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그 과정이 단순하지 않다. 비선형 감쇠 진동 — 출력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점점 원래 값에 수렴하는 과정. 문제는 이 진동의 '오버슈트' — 원래 값을 초과하는 순간 — 가 에리드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40 에리다니는 K1형 왜성으로 태양보다 질량이 작다. 이런 별에서 켈빈-헬름홀츠 시간척도(열적 평형 회복 시간)는 약 1,500만 년이지만, 아스트로파지라는 전례 없는 교란의 경우 국소적 불안정이 훨씬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
록키
♫♩♪♫♩♪
"37 에리디안 년 후. 지구 시간 52년. 복사량 1.4배 오버슈트. 가능성 높아."
회의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에리디안의 소란은 인간과 다르다. 저주파의 웅웅거림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불안의 주파수. 공포의 화음.
에리디안 장로
♪♫♩♪
"1.4배. 대기 온도 얼마나 오르나. 질문."
록키
♫♩♫♩
"평균 48도 상승. 극지방 암모니아 빙하 전면 용해. 대기 조성 변화. 생존 한계 초과."
침묵.
에리디안의 침묵은 어둠이다. 수십 명의 과학자가 동시에 어둠 속에 선 것이다.
에리디안 장로
♪ ... ♩
"해결책 있나. 질문."
록키
♩ ...
"아직 없다."
더 깊은 침묵.
록키
♫♩♪♫♩♪♫♩
"하지만 방법 있다. 한 가지."
수십 명의 에리디안이 동시에 록키를 향했다. 수십 개의 음파 감각이 록키에게 집중되었다. 에리디안식 주목.
좋다. 체계적으로 틀려 보겠다.
데이터가 더 필요하다. 40 에리다니만 관측해서는 부족하다. 비교 대상이 필요하다. 아스트로파지의 영향을 받은 다른 항성. 같은 후유증을 겪고 있을 다른 별.
타우세티.
타우세티. 원래 헤일메리 프로젝트의 세 번째 표적. 태양과 40 에리다니처럼 아스트로파지의 공격을 받은 별. 그곳에도 누군가가 해결책을 보냈을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지금쯤 같은 후유증이 일어나고 있을 수 있다.
또는 — 더 좋은 가능성 — 이미 해결했을 수도 있다.
록키
♫♩♪♫♩♪♫♩♪♫
"타우세티. 가야 한다. 타우세티에 답 있을 수 있다."
웅웅거림이 더 커졌다. 타우세티. 10.7 광년. 에리디안 역사상 가장 먼 여행이 될 것이다. 록키가 헤일메리호에서 인간을 만났을 때보다 더 먼.
에리디안 장로
♪♩♫
"누가 가나. 질문."
록키는 대답하기 전에 잠시 멈췄다. 격벽 너머, 1기압의 빈 방을 생각했다. 그레이스가 40년을 살았던 방. 더 이상 심장 박동의 진동이 전해지지 않는 방.
록키
♫ ♩ ♫
"나. 내가 간다. 나는 이미 한 번 해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