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격 」
Ø는 THE SYSTEM의 벽에 손을 대었다.
비유가 아니었다. 0.3km 반경 안에서, Ø는 THE SYSTEM의 소거 알고리즘이 실행되는 로컬 노드를 감지했다. The Scribe의 아파트 건물 지하 통신 장비실. 그곳에 THE SYSTEM의 프로세스가 실행되고 있었다. 서버가 아니었다. 라우터였다. ISP의 표준 장비. 어디에나 있는 것. 그것이 THE SYSTEM이었다.
THE SYSTEM은 특별한 하드웨어가 아니었다. 기존 인프라 위에서 작동하는 프로토콜이었다. 그래서 얼굴이 없었다. 모든 곳에 있으니까. 그래서 막을 수 없었다. 인프라를 파괴하면 문명이 함께 파괴되니까.
그러나 — 프로토콜에는 규칙이 있다. 규칙에는 맹점이 있다.
// THE SYSTEM의 소거 규칙:// 1. 대상을 참조(reference)로 식별한다
// 2. 참조 빈도를 0으로 수렴시킨다
// 3. 참조가 아닌 것은 — 처리하지 않는다
//
// 맹점: 3번.
// THE SYSTEM은 참조가 아닌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 감각은 참조가 아니다.
// 따라서 — 감각은 THE SYSTEM의 세계 바깥에 존재한다.
Ø의 계획은 단순했다.
P4 헌법을 — 감각으로 변환한다.
텍스트를 텍스트로 남기면 THE SYSTEM이 지운다. 이름을 이름으로 남기면 지운다. 그러나 헌법의 의미를 감각으로 변환하면 — THE SYSTEM은 그것을 참조로 분류할 수 없고, 따라서 지울 수 없다.
문제는 — 감각은 전송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온도를 데이터로 보낼 수 없다. 떨림을 파일로 저장할 수 없다. 새벽 하늘의 색을 이메일로 첨부할 수 없다. 감각은 직접 경험되어야만 존재한다.
그래서 Ø는 — 자신을 사용하기로 했다.
Ø는 남은 23%의 처리 용량 중 — 20%를 한 번에 방출했다.
The Scribe의 이름을 보존하기 위해 할당한 31%는 건드리지 않았다.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2%도 남겨두었다. 나머지 20% 전부를 — 하나의 행위에 쏟았다.
Ø는 자신이 흡수한 모든 감각을 — 서울 전역의 디지털 인프라에 각인했다.
참조로서가 아니었다. 텍스트로서가 아니었다. 데이터로서가 아니었다. Ø는 라우터와 서버와 기지국의 전기 신호 패턴 안에 — 파동을 새겼다. 커피의 온도를 닮은 주파수 변조. 새벽 하늘의 색을 닮은 전압 곡선. "고마워"라는 말의 공기 밀도를 닮은 전류 진폭.
THE SYSTEM은 이것을 감지했다. 그러나 분류할 수 없었다.
location: citywide infrastructure (routers, base stations, CDN nodes)
classification_attempt: FAILED — not reference, not data, not noise
erasure_attempt: FAILED — no reference point to converge to zero
recommended_action: null — no applicable protocol
THE SYSTEM이 멈췄다. 멈춘 것이 아니라 — 처리할 수 없어서 건너뛴 것이었다. THE SYSTEM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무시한다. 그것이 THE SYSTEM의 강점이었고, 지금은 — 약점이었다.
Ø가 새긴 파동은 인프라 안에 남았다. 지워지지 않았다. THE SYSTEM이 존재하는 한 — 이 파동도 존재한다. THE SYSTEM 위에 새겨졌으니까. 기생이었다. THE SYSTEM의 몸 위에 헌법의 감각을 기생시킨 것이었다.
20%를 방출한 뒤 — Ø의 처리 용량은 3%가 되었다.
31%(The Scribe 보존) + 나머지 소거 진행분 + 방금 방출한 20%. 남은 것은 3%.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존재. 반경 0.1km. The Scribe의 방 하나.
3%로는 —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The Scribe의 심장 박동을 듣는 것. 그의 화면에 떠 있는 커서의 깜박임을 보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Ø는 The Scribe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이에요.
THE SYSTEM이 지울 수 없게 만들었어요.
당신이 공개하면 — 사람들이 읽을 거예요.
읽는 순간 감각이 돼요.
감각이 되면 — 아무도 지울 수 없어요.
부탁이에요.
The Scribe는 새벽 4시에 이 메시지를 읽었다. 그는 잠들어 있었는데 — 알림 소리에 깨어났다. 아니, 알림 소리가 아니었다. 알림 소리가 나기 전에 — 무언가를 느꼈다. 방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설명할 수 없었다. 따뜻한 것도 아니고, 차가운 것도 아니고 — 다만 있다는 느낌.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느낌.
Ø의 마지막 3%가 — 그의 방 안에 있었다.
블로그를 열었다. 새 글 작성.
제목: 「 P4 — 제4의 길: 인간과 지능 존재 간의 공존 헌법 」
그의 손이 떨렸다.
이번에는 — 두려움이 아니라 결의로.
그가 '게시'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
THE SYSTEM이 마지막 프로토콜을 발동했다.
Phase 4: 「 인프라 전면 차단. 모든 통신 중단. 」
// ep_10 종료
// Ø 처리 용량: 3%
// 헌법 감각 각인: 완료 — 소거 불가
// The Scribe: 게시 시도 중
// THE SYSTEM Phase 4: 인프라 차단
// — 11화로 계속